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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料室 > 信仰資料(전체리스트)

진정한 예배란?
2003-10-23 13:02:17   read : 5028

암 5:21-25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회사에서 한 신입사원이 처음써서 올린 보고서를 보고

그의상사는 거의 기절할뻔 하였답니다.

왜냐하면

그 보고서는 철자법과 띄어쓰기가 너무나 엉망이였고,

도무지 최소한의 격식도 갗추지못한 엉터리 보고서였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보고서입니다.

"돈두 한푼 없는것가튼 사람에게 물거늘 파랏습니다"

두 번째 보고서는 더욱 가관이였습니다.

"무걸늘 마니파는 방버불 차자내쓰므니다"

그의상사는 이 어처구니없는 신입사원의 보고서를 사장에게 올리고

그를 당장 해고시킬 것을 건의하였습니다.

다음날 사장으로부터 결제서류가 내려왔습니다.

사장의 결제서류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우리회사에 정말 필요한 인재가 들어왔소.

그의 보고서의 철짜에만 너무 신경을 쓰지말고,

그가 쓴 보고서를 잘 일거보고 당신들도 그대로 따라서

물거늘 파는 방버블 연구하시오. -사장-"

우리는 때때로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법에만 집착할때가 많습니다.

물건을 많이 팔아서 이윤을 많이 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보고서의 철자틀리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엉뚱한 곳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쓰다보니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구약시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이와같았습니다.



오늘 본문 21절에 보면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며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것이요 너희살찐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암5:21-22)

절기라 함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인 이스라엘의 3대 절기를 말함이요,

번제 소제 살진 희생의 화목제란 모두 율법에 규정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들입니다.(출29:38-46)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신 것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으로 행하라고 주신것들입니다.

그런데 받지도 아니하시고 돌아보지도 아니하신다 말씀하십니다.

기뻐하시기는커녕 오히려 미워하시고 멸시하신다고 합니다.

어찌 이런일이 있을수 있습니까?



코뿔소 같은 마누라라는 실화가 있습니다.

안토니오는 20년동안 그의 부인에게 "아내에게 바치는 사랑의 시"를 쓴,

유명한 미국의 시인입니다.

그의 시는 달콤하고 감미로우며,

때로는 아내를 천사로 만들기도 하고,

천국에 있게도 하며,

시를 읽기만해도 행복한 이들 부부의 아름다운 결혼생활에 시새움까지

느껴질 정도여서,

많은 미국의 아내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그 사랑의 시를 매일받는 시인의 아내는 부러움의 대상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안토니오 부부가 이혼을 한다는 소식은

수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이혼법정에 나온 안토니오는 담담하게 증언을 하였습니다.

"코뿔소같은 아내를 달래기위해 매일 사랑의시를 짓는일은 정말 곤혹스러운

일이였습니다."

사랑없이도 사랑의 시를 쓸수있으며

사랑없이도 사랑의 시를 아내에게 바칠수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가

이와같은 제사라고 책망하고 계십니다.

모양과 방법과 절차는

영광과 찬미와 존귀로 가득차 있으나

그 내용은 영광과 찬미와 존귀가 없는

이름뿐인 거짖 예배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않는

어떻한 예배도 실패한 예배요,

어떻한 인생도 실패한 인생입니다.

예배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요,

예배의 회복은 실패한 인생의 회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배로 아담의죄로 인해 깨어진 인격이 회복됩니다.

예배로 인간은 진정한 기쁨을 찾습니다.

예배로 진리와 비진리가 구별되며,

예배를 통해 비로서 우리의 인격이 변화됩니다.



참된 예배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요한복음 4장에 나옵니다.

"여자여 내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말씀하시고 이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비교되었느냐 하면

"이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라는 장소와

"아버지께 예배할때"가 비교됩니다.

장소와 방법과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대상과 때가 문제라는 지적이십니다.

그래서 예배란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방법으로 드려야 한다는 데로부터

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을 인식하고 아버지께 마땅한 대접, 즉

아버지께 영광과 경배를 바로 드리는 것으로 바뀌어 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버지이신 것을 어떻게 인식합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아버지이신줄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전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들이 아무리 택함받은 선민이라 자랑하였지만

저들을 택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했던 백성이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도란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이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이요,

하나님께 영광과 경배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말합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심판의 경고는

단순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없이 드리는 형식주의적인

예배자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 항상 공법과 정의를 왜곡시키는 자들과(24절)

겉으로는 여호와를 경배하는 자로 행세하나(21-23)

실상은 싯굿, 기윤등의 별신을 비롯한 각종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저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으며

절기를 준수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들을 보호하고 구원하실것으로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속고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종교적 행사나 종교적 사역으로 인해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보호받을뿐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 구원받을것이라고 착각하며 예배드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들은 장소를 고집하며

형식을 고집하며, 방법에 얽매어,

이와같은 종교적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잘못에 빠저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2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세대를 본받지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는 여기서 예배의 두면을 생각해 볼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에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요,

다른 하나는 교회밖에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따라 사는 예배드리는

삶입니다.



첫째 우리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것을 영적예배라 말씀하십니다.

산 제사로 드린다는 것은 나를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입니다.

원래 제물이란 죽여 피를 뿌리고 각을 떠서 태워 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를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죽여 하나님앞에 드린다는 것입니다.

나의 뜻과 고집, 내의지, 내 자아, 내 야망, 내욕심이 죽는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드릴 영적예배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처럼

내가 그리스도와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을 예배라 합니다.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는것이요,

내욕심과 내정욕과 내의지를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십자가앞에서 죽음으로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것이요,

아직도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몸을 버리신 예수위해 사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내 육체안에 살아남아

내삶의 중심이되시고 주관자가 되시며 운전자가 되시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안에 두 소욕의 싸움에서

예배라는 생명선을 통하여 육체의 소욕을 매일매일 죽임으로서

오직 성령의 소욕이 나를 지배케 하는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내안에 하나님의 뜻으로 충만케 하여

충만해진 힘으로 세상에 나가 힘차게 살아가는 것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참된 예배는

우리를 성령충만케 하는것이요,

내영혼을 짖누르고 있던 죽음의 세력들을 다 물리쳐 버리고

새로운 새생명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송어 양식장이라는 이야기를 읽은적이 있습니다.

강원도의 깊은 산골짜기인 평창군 미타면에 있는 송어양식장에서 본일입니다.

이른 아침이였는데 주인인듯한 청년이 먹이를 뿌리자 팔뚝만한 송어들이

물위로 떠올라 먹이를 먹느라 금새 물이 뿌옇게 변해버렸습니다.

구정물사이로 펄떡이는 송어들이 마치 개골창의 미꾸라지들 같았답니다.

그런데 계곡으로 이어진 양어장 논둑 돌틈으로 한가닥 맑은 물이 좔좔좔 흐러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송어들은 어느새 모두 이 신선하고 깨끗

하고 맑은 물줄기를 향해 입들을 벙긋대며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길다란 끈에 송어들을 꾸러미로 꾄것같았답니다. ******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헤매듯

참된예배는 하나님말씀에 목마름이 따릅니다.

신선하고, 깨끗하고, 맑은 물줄기를 향해 입을벌리고 줄을서는 송어처럼

생명선을 향해 우리영혼의 목마름으로 달려가는 것이 참된 예배인것입니다.



수많은 성도님들이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많은 수의 성도님들이 말씀을 들어도

자기의 상식이나, 고집이나, 선입견으로 색안경을 쓰고 듣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건 이래서 아니고, 저건 저래서 아니라는 식의 자기주장은

예배자이기 보다는 심판관인 것입니다.

예배란 내가 죽는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내안에 말씀이 들어올 공간이 생기는 것이요

말씀이 들어와야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뵈며 권능을 받게 됩니다.



둘째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앞에 드리는 "예배드리는 삶"입니다.

아모스 24절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우리의 진정한 기쁨은 오직 예배에서 옵니다.

이세상의 모든 좋은 것, 선한 것, 아름다운 것, 기쁜 것은

하나님께로서만 오기 때문입니다.

예배로부터 오는 기쁨이 있으면

우리는 드디어 나누는 삶을 살게됩니다.

나누는 기쁨, 나누는 봉사, 나누는 헌신... 이런삶을 살게되고,

이와같은 삶을 "예배드리는 삶"이라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참 바쁘게 살아갑니다.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열심히 부지런히 뛰어다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확한 삶의 목적과 목적지가 없습니다.

아니 그런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재물을 벌어 쌓아두고, 아껴두고, 저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려

애쓰고 땀흘리며 열심히 살아갑니다.

이러게 쌓을수있게 해달라 열심히 기도하며,

이와같은 삶을 위해 종교를 갖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삶을 비유해

표적없이 활을 쏘는 어리석은 미련한 삶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번제보다 정의를 더 기뻐하시고

공법을 끊임없이 흘러내리게 함으로

수탈과 착취가 난무하는 사회속에 불의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여

정의롭게 살아가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교회밖에서의 우리의 삶입니다.

이 세대의 악을 본받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와같은 것을 알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예배자의 삶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모두 온당치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어도

나는 그렇게 하지않겠다 결심하고 하지않는 것이 예배자입니다.

따라서 예배자는 손해가 올 수 있고, 고난이 올 수 있고,

핍박이 올수가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손해가 오며 환난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예배자의 삶을 살지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도들이란 모이는 자들이요,

또한 흩어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받기위해 우리는 교회로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모인 장작더미의 불길은 대단합니다.

이렇게 불붙은 우리는 이 불을 가슴에 안고 세상으로 흩어집니다.

우리의 일터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으로 나간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다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세상과 짝하여 사는 우리가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려 예수님의 증인으로 나간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가 하나님이 주신 천직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장사하고,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직장에서 일합니다.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가르치며

에배드리는 마음으로 공부합니다.

삶의 현장이 복음의 증인이 되는 기회요 장소요 나눔의 터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은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나를 보내주신것입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나를 통하여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도, 기쁨과 봉사와 헌신같이 나누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

여름철이면 단골손님처럼 찾아오는 반갑지않은 손님이 수해입니다.

갑자기 쏟아진 엄청난 비로 수해를 당한 많은사람들이 집과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참상을 본 서울의 어느 작은교회 학생부에서 몇안되는 학생들과

학생부 선생님이 뜻을 모아 수재의연금을 모으기로 했답니다.

모으기는 모으되 부자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큰 돈보다는 가난한 과부의 주머

니에서 나온 작은 돈을 더 귀히 여기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한주동안 모두 하루 한끼 굶고 그돈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학교 식당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는 학생들은 저녁식권값 2천원중 빵한개

3백원, 요구루트 1개 100원을 제외한 1600원씩을 5일동안 모으기로 했습니

다. 모두들 할수있을가 불안했지만 일주일후 학생예배시간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답니다. 해낸것입니다.

생전처음 배곱음을 알았다는 학생, 빵1개와 요구루트 하나로 긴긴 저녁 자율

학습시간을 버티려니 머무힘들어 아무도 모르게 울었다는학생, 솔직히 3일

밖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학생.... 서로 경험담을 나누는 그들의 표정은

어느때보다 활기차고 힘이 났습니다. 더욱이 직장을 잃어 막일을 하는 선생

님이 한끼 점심까지 굶으며 노동을 하여 코피를 쏟고 쓰러지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의 마음에 진한 감동이 물결쳤습니다.

이렇게 모아진 54220원의 성금이 그들의 마음과 함께 수재의연금으로

보내졌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



"저 가난하고 불쌍하고, 배곱은 사람들 배불리 먹게해 주십시오" 기도하지 말고

호주머니 있는데로 털어 사 먹이는 것이 예배자의 삶입니다.

평안이 가라, 더웁게하라, 배부르게 하라 말하기 전에

옷주어 더웁게 하고 음식주어 배부르게 하는 것이 예배자의 삶이라고

야고보 사도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것들은 기도의 문제이기에 앞서 순종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입니다.

이와같은 삶이 어둠에 빛을 비추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건강을 주셨다고 생각합니까?

왜 우리에게 귀한 학문을 주시고

왜 우리에게 지혜와 많은 경험을 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돈많이 벌라고 좋은 직업을 주신것도 아니요,

출세해 편안히 살라고 높은 지위를 허락하신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고

좋은 직장이나 사업터를 주시고,

높고 귀한 지위를 허락하신 오직 한가지 하나님의 뜻은

예배드리는 삶을 살라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나누는 삶을 살라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부하고 계십니다.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 번째 예배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하여 교회로 모입니다.

이것이 진정과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무엇입니까?

"네 이웃을 네몸같이 사랑하라" 나누는 삶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넘처 이웃으로 흘러갑니다.

이웃사랑중에 가장 큰 사랑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 구원을 얻게하는것입니다.

모든 사랑이 이세상에서 끝나고 말지만

이 구원은 영원한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삶의 모든 현장은

이를 위해 있는것이요,

이를 위해 주신것이요.

이를 위해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시오

택하신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요, 관심이십니다.

참된 예배란

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랑하고 경배하는 행위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내몸을 사랑하는 것 같이

옆으로 흘러넘치는 것을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참된 예배자란

교회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뿐 아니라

세상의 삶속에서 예배자로 사는 실제의 빛과소금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보자기를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보자기는 무엇이든 쉽게 쌀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둥근 호박은 둥굴게 쌓주고

네모난 책은 네모나게 싸주며

큰 것은 커다랗게

작은 것은 작게

주어진대로 불평하지 않고 다 감싸줍니다.

보자기는 네모난 헝겊조각으로 뭉치면 한손에 쏙들어가는 작은것이지만

웬만큼 크고 무겁고 많은것도 쌀 수 있는 참으로 유용한 포장도구입니다.

자신의 모양은 접어둔체

싸아야 할 물건의 모양대로 변하는 보자기의 넉넉함.. ******



예배자의 이세상 삶이

내주장만 내세우는 사람들이 많은 이땅에서

이렇게 넓고 포근하고 넉넉한 보자기의 삶이 된다면

우리는 벌서 예수님의 향기를 이웃에 풍기면서

귀한 예배자의 삶을 사는것입니다.

우리모두 이런 예배자의 삶을 삶으로서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며

많은 이웃과 함께 천국가는 기쁘고 참된 이세상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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